철강 산업의 탈탄소 전환에서 기술은 더 이상 변수가 아니다. 수소환원제철(H2-DRI)과 전기로(EAF)를 결합한 탈석탄 생산 방식은 파일럿 단계를 거쳐 상업 규모 실증 단계에 도달했다. 남은 과제는 스케일 확장, 즉 대규모 자본 투입을 정당화할 수요를 가시화하는 것이다. 유럽의 준상용 프로젝트들이 재정 문제와 일정 지연을 반복하는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다. “그린철강을 실제로 사줄 수요가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가”에 대한 검증된 답이 없으면 투자자도, 장기구매계약도 대금을 지불할 근거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철강·완성차 업계는 오랫동안 두 문장에 기대어 결정을 미뤄왔다. “시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비자가 그린프리미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이 교착의 유일한 근거는 수요의 불확실성이다. 그렇다면 그 수요를 측정 가능한 형태로 드러내는 일 자체가 전환의 순서를 바꾸는 개입이 된다. 자동차 시장이 결정적 지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로 철강의 주요 수요처인 자동차와 선박 가운데 선박은 B2B 근거만 존재하지만, 자동차는 개별 소비자의 브랜드 선택과 지불 의사가 구매 단계에서 직접 드러난다. 이 신호는 생산 계획에서 철강 구매 계약, 다시 설비 투자 결정으로 이어지는 가장 짧은 경로다.
그런데 정작 그 질문에 답한 연구는 없었다. KoSIF(2024)는 B2B 철강 구매 기업을, Transition Asia(2025)는 비용 모델링을 다뤘다. 미국에서는 Industrious Labs와 Ducker Carlisle이 2025년 3월 소비자 1,251명을 조사해 관심 65%, 지불 의향 62%를 확인했다. 그러나 한국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도, 두 시장을 동일 설문지로 동시 비교한 조사도 존재하지 않았다. ASL이 칸타(Kantar)에 의뢰해 2026년 5월 한국(n=1,001)과 미국(n=1,000)에서 조사를 동시에 수행한 이유다.
결과는 업계의 두 전제를 무너뜨린다. 한국 82%·미국 71%가 그린철강 차량에 추가 비용을 낼 의향을 밝혔고, 안전성·연비·가격이 동일할 때 한국 67%·미국 51%가 그린철강 차량을 택하겠다고 답했다. 정부 보조금에는 한국 77%(반대 2%)·미국 61%(반대 12%)가 찬성했다. 일본이 시행 중인 5만 엔(약 312달러) 보조금은 양국의 차량당 추가 비용(한국 237달러, 미국 199달러)을 전액 상쇄하는 수준이다. 반면 현대자동차가 제시한 2035년 저탄소 철강 30% 목표는 스틸제로(2030년 50%)·퍼스트 무버스 연합(2030년 니어제로 10%)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모델별·시점별 적용 약속은 여전히 비어 있다. Lead the Charge 2026년 평가에서 현대차 9위(철강 12점), 기아 11위(철강 7점)라는 성적이 그 격차를 말해준다. 준비가 덜 된 쪽은 소비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