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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철강도시의 탈탄소 전환이 당진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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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17억 원이던 지방 법인세 수입이 2024년 28억 원으로 급감했다. 90% 넘게 줄었다. 당진은 제조업 생산 31.2조 원 중 60%에 해당하는 18.7조 원이 철강에서 나오고, 제조업 종사자 35,800명 중 약 40%가 철강 부문에 종사하는 도시다. 철강 경기 하나가 흔들리면 도시 재정 전체가 흔들리는 구조다.

그런데 이 도시 앞에 더 근본적인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철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10%를 차지하며, 탄소중립을 위해 석탄 고로에서 수소환원제철로,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 전환은 단순한 기술 교체를 넘어 산업 구조의 전환이기 때문에 지역경제·고용·공동체에 심각한 파급효과를 동반한다. 포항·광양·당진은 국내 조강 생산의 93%를 차지하는 핵심 철강도시로, 탈탄소 전환이 본격화될 경우 그 충격은 도시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이 전환이 시작됐다. 영국·일본·독일의 철강도시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탈탄소와 지역경제 보호 사이에서 답을 찾고 있다. 이 글은 그 사례를 분석하여 당진이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짚는다.

철강사들의 넷제로 전략, 네 가지 경로 

전 세계 철강사들은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로 넷제로 달성을 선언했지만 거기에 이르는 경로는 각기 다르다. 기술 성숙도, 자본 여력, 에너지 인프라, 정책 환경 등에 따른 전략적 선택이 갈린다.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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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실제로 철강사들은 단일 경로를 택하기보다 여러 수단을 조합해 자신만의 전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같은 그룹 안에서도 거점별로 경로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일본제철은 그룹 전체로 보면 고로 점진적 전환형이지만, 야하타 거점만 놓고 보면 전기로 전환형에 해당한다. 이 글에서 다루는 해외 사례들도 이런 맥락 위에서 읽어야 한다.

해외 3개 사례 — 무엇이 달랐는가?

영국 포트탈보트: 국가와 기업이 주도하는 전환

포트탈보트는 2024년 고로를 폐쇄하고 2027년 전기로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 5억 파운드를 포함해 총 12.5억 파운드가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주목할 점은 중앙정부와 웨일스 정부, 타타스틸이 전환위원회를 공동 구성하고 1억 파운드 규모의 전환기금을 마련해 실직자 재교육·창업 지원·공급망 다각화·지역 산업전환 허브(SWITCH) 등 다층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2024년 9월 이후 고로 관련 일자리 2,800여 개가 사라졌다. 영국 정부는 회사 내부 전직, 조기퇴직 그리고 전환위원회 프로그램을 통해 재취업 및 창업 등으로 일정 부분 흡수되고 있다고 평가하지만, 실업급여 청구 건수에 급격한스파이크가 없었던 것이 곧 전환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 생긴 일자리의 임금과 조건이 기존 철강 일자리에 준하는지, 그 일자리가 포트탈보트 안에서 만들어지는지는 여전히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무엇보다 의사결정이 기업과 정부 사이에서 먼저 이뤄진 후 노조와 지역사회가 뒤늦게 참여했다는 점은 전환 절차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이 불신은 넷제로 정책에 대한 냉소를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 야하타: 조용한 전환, 보이지 않는 비용

야하타는 2020년 고로 1기를 폐쇄한 데 이어 나머지 고로도 2029~30년까지 연 200만 톤 규모의 전기로로 전환할 계획이다. 야하타 거점은 전기로 전환형에 해당하지만, 일본제철은 그룹 전체로 보면 고로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장기적으로 수소환원제철을 모색하는 점진적 전환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야하타는 그 안에서 특정 노후 거점을 전기로로 재편하는 선택지인 셈이다.

일본제철은 이 과정에서 정리해고 없이 전근·조기퇴직·자연감소 방식으로 고용 조정을 흡수했다. 일본식 기업별 노조 문화와 종신고용 관행이 뒷받침된 방식이지만, 대규모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의 생계를 지키면서도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여기에 일본 정부의 그린전환(GX) 이니셔티브가 전기로 투자에 약 2,514억 엔 규모의 보조금을 제공하면서 기업의 전환 결정을 뒷받침했다는 점도 중요한 구조적 요인이다. 다만 전환 과정에서 공개적 논의가 거의 없어 비용과 효과를 투명하게 평가하기 어렵고, 전환이 지역 경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얼마만큼 대응했는지는 의문이다.

독일 잘츠기터: 노사가 함께 설계한 전환

잘츠기터는 세 사례 중 정의로운 전환 원칙에 가장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소 기반 직접환원과 전기로를 결합한 단계적 전환(SALCOS)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는 하이브리드 전환형으로 분류된다. 1단계에서는 천연가스 비중이 높은 DRI 공정을 도입하고, 이후 수소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면서 고로를 축소해 나가는 구조다. 최종적으로는 수소-DRI-전기로 중심의 생산 체제를 지향하지만, 전환 과정 자체는 여러 공정을 병행하며 단계별로 이행한다는 점에서 하이브리드적 성격이 강하다.

총 25억 유로 중 약 13억 유로를 연방·주정부가 지원했다. 독일식 공동결정제(Mitbestimmung)에 따라 노동자가 이사회와 노사협의회에서 전략 결정에 직접 참여했고, 고용·임금 유지 원칙과 유급 재교육을 노사 합의로 명문화했다. IG Metall 노조는 단순히 전환에 동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방·주정부를 상대로 보조금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정책 행위자로 나섰다. 지역 전환 네트워크(ReTraSON)를 통해 철강·자동차·연구기관·지자체·시민사회가 함께 산업과 고용의 미래를 논의하는 구조도 갖췄다. 탈탄소가 탈산업화가 아닌 산업 고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해외 사례가 당진에 주는 교훈은

당진에는 고로가 있고 현대제철과 전기로 제철사들이 있다. 탄소 다배출 설비인 고로의 폐쇄와 수소환원제철로의 공정 전환이 탈탄소의 핵심이다. 현대제철은 2050년 탄소 중립과 2030년 중간 감축 목표 12%를 내세우며 고로의 사용을 최대한 유지하는 점진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에는 가스 기반의 직접 환원 설비 건설을 추진하고 있지만 당진에는 고로를 기반으로 일정량의 스크랩을 섞는 수준에 머문다. 철강산업의 침체와 탈탄소화 전환 과제 앞에서 현대제철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환을 가속화할지, 그것이 당진의 고용·지역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구체적인 사회적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해외 사례가 반복해서 보여주는 교훈을 바탕으로, 당진 지역의 전환 논의에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짚는다.

결정이 나기 전에 ‘수평한’ 테이블을 만들어야 한다

포트탈보트의 가장 큰 실패는 기술이나 예산이 아니었다. 기업과 정부가 먼저 결정하고, 전환위원회는 그 이후에 꾸려졌다. 노조와 지역사회가 합류했을 때 이미 방향은 정해진 뒤였다. 결과적으로 절차에 대한 불신이 남았고, 그 불신은 전환 전체에 대한 냉소로 이어졌다. 당진은 이 순서를 뒤집어야 한다. 현대제철의 기술·투자 방향을 논의하는 초기 단계부터 핵심 이해관계자, 즉 정부, 지역정부, 해당회사, 노조, 지역시민사회가 함께하는 전환협의체 구성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수습이 아니라 공동 설계가 바람직하다. 나아가 전환협의체는 형식적인 구성이 아니라 권한이 공평하게 부여되어 실질적 운영이 보장되어야 한다. 

보조금은 조건과 함께 와야 한다

정부 지원이 기업의 설비 투자에만 흘러들어가는 구조로는 부족하다. 잘츠기터 사례에서 독일 연방·주정부는 약 13억 유로의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고용 유지 원칙과 재교육 프로그램, 지역 산업 전략을 전환의 조건으로 함께 설계했다. 당진에서도 향후 현대제철 관련 대규모 전환 투자에 정부 지원이 논의될 때, 고용 유지 원칙·노동자 재교육·지역 공급망 다각화 계획이 지원 조건으로 명시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재정 지원이 지역사회 전체의 전환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처음부터 설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몇 명을 교육했나’가 아니라 ‘어떤 일자리로 갔나’를 물어야 한다

재교육 참가자 수, 프로그램 운영 건수 같은 투입 지표만으로는 전환의 실질적 성과를 가늠할 수 없다. 포트탈보트에서도 수천 건의 훈련과 수백 개의 기업 지원이 이뤄졌지만, 넷제로 부문에서 생겨난 일자리가 반드시 전환이 일어난 지역에서 동등한 임금과 조건으로 창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 반복해서 지적됐다. 당진의 전환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환 이후 기존 임금·근로조건에 준하는 일자리로 이동한 노동자의 비율은 얼마인가. 새로 생기는 그린 일자리는 당진 안에서 얼마나 만들어지는가. 이 두 가지를 핵심 성과 지표로 삼고, 수소·재생에너지·재활용 등 당진형 신산업 전략을 정의로운 전환 프레임 안에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현대제철 한 기업의 전환을 넘어, 충남·서해안권 전체의 에너지·산업 전환과 연결된 광역 전략 속에서 당진을 자리매김하는 시각이 필요한 이유다.

포트탈보트·야하타·잘츠기터는 동일한 탈탄소 압력 아래서도 전혀 다른 전환의 모습을 보여줬다. 기술 경로의 선택만큼이나, 누가 언제 어떻게 참여했는지가 전환의 성격을 결정지었다. 당진의 철강 전환이 정의로운 전환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로 같은 기술 로드맵을 넘어, 노사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설계하는 거버넌스와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제도, 그리고 전환 비용과 이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그 논의를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도시가 당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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